정신과 의사인 제가 상담 중 입을 닫는 '비밀'

안녕하세요, 소민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민국입니다.

진료실이라는 공간은 참 묘한 곳입니다.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격렬한 감정이 오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숨소리조차 크게 들릴 만큼 깊은 침묵이 내려앉기도 하죠.

상담을 이어가다 보면 가끔 환자분들께서 조심스럽게, 혹은 조금은 답답한 목소리로 물으실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세요? 제 이야기가 이상한가요? 아니면 무슨 생각 중이신가요?"

오늘은 제가 진료실에서 '침묵'이라는 도구를 선택하는 이유, 그리고 그 침묵 속에 숨겨진 마법 같은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상담의 핵심 중 하나는 '자유연상'입니다. 환자가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검열하지 않고 그대로 내뱉는 과정이죠. 이것은 환자분 스스로도 미처 몰랐던 자신의 무의식에 접근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그런데 제가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 혹은 짧은 추임새조차도 이 자유연상의 흐름을 방해할 때가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의 말은 환자의 주의를 의사에게로 돌리게 만듭니다.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의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방금 저 질문은 무슨 의도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환자의 시선은 자신의 내면이 아닌 '타인(의사)'에게 머물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안타깝게도 자신의 깊은 무의식과는 조금씩 더 멀어지게 되죠. 제가 말을 아끼는 이유는 환자분이 자신의 내면 속으로 더 깊이, 그리고 온전히 침잠하실 수 있도록 심리적 공간을 열어드리기 위함입니다.

마법은 의사가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정신분석의 대가이자 연세의대 출신으로 현재 '서울 인간관계정신분석회(SIPPA)'를 이끄시는 이재승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법은 의사가 부리는 게 아니다. 환자가 부리는 거다."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많은 분이 정신과 의사가 어떤 명쾌한 해답을 주거나, 마법 같은 조언으로 마음의 병을 단번에 고쳐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치유의 마법은 의사의 입술 끝이 아니라, 환자분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직면하고 그 이면의 진실을 발견하는 순간에 일어납니다.

의사는 그 마법이 일어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조력자일 뿐입니다. 환자가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낼 때까지, 의사는 그 곁을 묵묵히 지키며 기다려주는 '안전한 기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체부 룰렝의 초상화 by 빈센트 반고흐

당신의 침묵 속에서 꽃피는 진실들

상담실의 침묵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정적 속에서 당신은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합니다. 평소에는 소음과 일상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내 마음 밑바닥의 울림 말입니다.

그 침묵을 견디고, 다시 입을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갈 때, 환자분들은 놀라운 통찰을 얻곤 합니다. "제가 방금 이 말을 왜 했을까요?", "생각해보니 저는 늘 이런 패턴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었네요." 같은 깨달음은 제가 백 번 설명해 드리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집니다.


소민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리는 모든 분께 약속드립니다. 제가 당신의 말에 바로 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이야기를 가볍게 여겨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이 부릴 '치유의 마법'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가장 정중하고 세심하게 당신의 영혼을 경청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오늘도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느라 애쓰신 당신을 응원합니다.

소민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민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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