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탓, 유전자 탓' 이제 그만해도 되는 과학적인 이유

안녕하세요, 소민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민국입니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환자분들 중에는 깊은 무력감에 빠진 목소리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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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저희 부모님도 평생 우울증을 앓으셨어요. 저도 결국 그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이렇게 나약하고 아픈 걸까요? 바꿀 수 없는 거라면 전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집안 내력이나 유전적인 취약성을 알게 된 후, 마치 자신의 미래가 이미 정해진 비극적 결말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하시는 것이죠. 타고난 유전자는 바꿀 수 없으니 내 노력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생각, 그 거대한 벽 앞에서 느끼는 절망감을 저는 깊이 공감합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여러분에게 조금은 안도감을 드릴 수 있는 따뜻한 반전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유전자는 우리 삶의 '설계도'일 뿐 '결과물'이 아니며,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내과에서 당뇨병을 관리하듯, 정신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흔한 신체 질환인 '당뇨병'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선천적으로 당뇨에 취약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무조건 심각한 당뇨 합병증을 앓으며 살아가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전적 요인이 있더라도 식이요법을 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며, 필요할 때 의학적인 처방을 통해 약으로 혈당을 조절하면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즉, 유전자는 가졌을지언정 질병은 '컨트롤'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다루는 마음의 병도 이와 완벽하게 같습니다.

우울증, 불안장애, 조울증이나 조현병 같은 질환들도 분명 유전적인 취약성이 영향을 미칩니다.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이 남들보다 조금 더 민감하게 태어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치료 불가능한 운명'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유전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인지하고, 약물치료를 통해 뇌의 불균형을 의학적으로 바로잡아 주며, 상담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면 뇌 기능은 얼마든지 안정적인 상태로 조절됩니다. 내과에서 당뇨약을 먹듯, 정신과에서도 유전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을 의학의 힘을 빌려 현명하게 컨트롤해 나가는 것입니다.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은 '지금의 나'

현대 의학 중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유전자 염기서열 자체는 변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환경과 마음가짐, 생활 습관에 따라 특정 유전자가 켜지기도 하고 꺼지기도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낸 학문입니다.

아무리 우울증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어도, 내가 매일 따뜻한 햇볕을 쬐고,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마음을 돌보는 훈련을 하면 그 우울 유전자는 발현되지 않고 잠든 상태(Off)로 머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유전적 취약성이 전혀 없더라도 감당하기 힘든 만성 스트레스에 자신을 방치하면 마음의 병이 생길 수 있죠.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유전자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 유전자를 어떻게 다루며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유전자는 우리에게 경향성을 제시할 뿐, 여러분이 오늘 내리는 선택과 치료에 대한 의지까지 구속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의 삶은 당신이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혹시 부모로부터, 혹은 타고난 기질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생각에 홀로 괴로워하고 계셨나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에 매달려 자책하기보다, 의학의 도움을 받아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영역을 하나씩 넓혀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전적으로 취약하게 태어난 것은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약해진 뇌 기능을 의학적으로 안전하게 지탱해 주고, 여러분이 삶의 주도권을 다시 쥘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와 같은 정신과 의사들의 역할입니다.


정해진 운명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안한 유전자의 스위치를 함께 끄고, 건강한 일상을 켤 수 있도록 이곳 소민정신건강의학과에서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하겠습니다. 언제든 편안하게 걸음을 재촉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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