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가시가 되었을 때: 의처증·의부증 치료, 그 이후의 기록
안녕하세요. 소민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민국입니다.
지난번 의처증과 의부증, 즉 '부정망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정말 많은 분이 공감해 주셨습니다. 진료실 문을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셨을지 알기에, 글을 읽고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들의 마음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오늘은 그 용기 있는 발걸음 이후, "정말 약을 먹으면 좋아질 수 있을까?", "치료 과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 뾰족하던 세상이 조금씩 평평해집니다
부정망상 환자분들이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느끼는 변화는 '머릿속의 소음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배우자의 사소한 행동 하나(늦은 귀가, 누군가의 문자, 짧은 통화)가 머릿속에서 거대한 음모론으로 자동 조립되었습니다. 뇌 안의 신경전달물질이 오작동하여 온통 '위험 신호'만 켜댔기 때문입니다.
약을 복용하면 이 과열된 회로가 서서히 식기 시작합니다.
"원장님, 전에는 아내의 핸드폰 진동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냥 '누가 문자 보냈나 보다' 하고 넘어가 지네요."
이것이 치료의 첫 단추입니다.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의심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2. '망상'이 '현실'과 부딪힐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고비
치료를 하다 보면 참 신기하고도 안타까운 단계가 찾아옵니다. 뇌 기능이 회복되면서, 환자는 비로소 자신이 해온 행동들을 이성적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바로 이때, 두 번째 지옥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환자가 마주하는 부끄러움과 죄책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토록 괴롭혔다는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일상을 감시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극심한 우울감과 자책감에 빠집니다. 이 슬픔을 견디지 못해 "약 먹어도 소용없다"며 치료를 중단해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보호자의 참아왔던 분노의 폭발 "이제 정신이 좀 들어?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라며 그동안 쌓인 억울함을 쏟아내게 됩니다. 너무나 당연한 감정의 배출이지만, 이제 막 아물기 시작한 환자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습니다.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서는 환자에게는 자책 대신 "병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고, 지금 고치고 있으니 괜찮다"는 격려가, 보호자에게는 그동안의 상처를 충분히 치유할 수 있는 별도의 상담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3. 상처 입은 신뢰를 다시 이어붙이는 시간
망상은 약으로 지울 수 있지만, 그동안 깨진 부부의 신뢰와 마음의 상처는 약으로 붙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치료 이후 두 사람이 함께 해나가야 할 '재활 훈련'의 영역입니다.
단단했던 도자기도 한 번 깨지면 다시 붙이는 데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듯,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눈을 맞추고 일상을 공유하며, 아주 작은 신뢰부터 차근차근 다시 쌓아가야 합니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병을 함께 이겨낸 부부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한 동반자 관계로 거듭나곤 합니다.
저 역시 의사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매일 마음의 균형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며 살아갑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간절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진료실에서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부부들을 볼 때면, 마치 겨우내 시들어서 다 죽어가던 화분에 정성껏 물을 주어 마침내 푸른 새잎이 돋아나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처참하게 무너진 관계라도, 생물학적인 원인을 치료하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지지를 멈추지 않는다면 반드시 회복의 싹이 돋아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배우자를 의심하며 괴로워하는 당신도, 억울한 비난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당신도, 결코 틀린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치료가 필요한 '아픈 상태'일 뿐입니다.
그 아픔의 끝에 서서, 제가 함께 걷겠습니다. 소민의 문은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